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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있네. 여기 있어. 그동안 잘 지냈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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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있네. 여기 있어. 그동안 잘 지냈나 친 " “여기 있네. 여기 있어. 그동안 잘 지냈나 친구….” " 지난 18일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관에 있는 전사자 명단에서 옛 전우의 이름을 찾아낸 노신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깊게 패인 그의 눈가엔 이내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 회원들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에 헌화한 뒤 감사를 표하는 미국 시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필립 셔틀러(99)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은 한참 동안 전우의 이름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여기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후세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Q : 한국전쟁은 한·미 혈맹의 출발점이었다. A : “자유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한 전쟁이었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미국은 한국전 기념관을 세웠고, 한국은 기념관 벽에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겼다. 결국 돌아오지 못한 전우 프레드 밀러 소위의 이름도 한국이 새겨줬다. 함께 피를 흘려 지킨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전 세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아시아의 핵심축(Linchpin)이 됐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 회원들이 찾은 한국전쟁기념관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n is not free)'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Q : 한국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A : “전쟁 당시 나는 23살이었다. 1954년 다시 방문한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고, 1978년 고위 장교로 다시 부임했을 때 이미 군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한국인들은 내가 한국전에서 싸웠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전쟁의 참혹함보다 당시 내게 보였던 한국인들의 눈물이 오히려 평생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다.” 셔틀러 중장은 한국전쟁의 전환점이 됐던 인천상륙작전과 4500여명의 전사자를 내며 미군 전" “여기 있네. 여기 있어. 그동안 잘 지냈나 친구….” " 지난 18일 워싱턴 한국전쟁 기념관에 있는 전사자 명단에서 옛 전우의 이름을 찾아낸 노신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깊게 패인 그의 눈가엔 이내 촉촉한 눈물이 맺혔다.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 회원들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에 헌화한 뒤 감사를 표하는 미국 시민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필립 셔틀러(99)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은 한참 동안 전우의 이름을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여기에 새겨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후세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Q : 한국전쟁은 한·미 혈맹의 출발점이었다. A : “자유에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증명한 전쟁이었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미국은 한국전 기념관을 세웠고, 한국은 기념관 벽에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겼다. 결국 돌아오지 못한 전우 프레드 밀러 소위의 이름도 한국이 새겨줬다. 함께 피를 흘려 지킨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전 세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아시아의 핵심축(Linchpin)이 됐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8일(현지시간)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 회원들이 찾은 한국전쟁기념관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n is not free)'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Q : 한국에 대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A : “전쟁 당시 나는 23살이었다. 1954년 다시 방문한 한국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고, 1978년 고위 장교로 다시 부임했을 때 이미 군복을 입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한국인들은 내가 한국전에서 싸웠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전쟁의 참혹함보다 당시 내게 보였던 한국인들의 눈물이 오히려 평생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다.” 셔틀러 중장은 한국전쟁의 전환점이 됐던 인천상륙작전과 4500여명의 전사자를 내며 미군 전사(戰史)에서 가장 고전한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을 군함에 태웠던 흥남 철수작전에도 참전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등에 참전했던 필립 셔틀러(99)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은 18일(현지시간) 사진 촬영 요청을 받자 "나이가 들어도 전우들 앞에서 지팡이에 의지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며 지팡이를 배우 " “여기 있네. 여기 있어. 그동안 잘 지냈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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